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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SH

어릴 적 내 주위 사람들은 나보고 효자라고 했다. 손목에 검정색 봉지를 걸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볼 때마다 심청이도 울고 갈 효자라며 나를 칭찬했다. 어머~ 우리 찬열이 심부름하니~? 어쩜 이렇게 착할까~ 나는 그 칭찬들에 어색한 웃음으로 일관했다. 내 상황이 어떠한 지 하나도 알지 못 하면서 깔깔대는 것이 역겨웠다. 심청이. 뭐, 좋다. 근데 심청이랑 나는 마음 먹은 것부터 달랐다. 걘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난 그럴 생각이 병아리 눈물 만큼도 없었다. 누가 '돈 얼마 줄테니 네 아버지를 위해서 한강에 뛰어들래?' 물으면 난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심청이랑 나는 그만큼이나 달랐다. 내 몸 하나 구겨넣기도 버거운 좁은 집. 그 안의 알코올 중독자 한 명과 나. 집 한 구석에 쌓인 소주병과 고지서들. 배고픔과 폭력. 그 속에서 내가 하는 건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사다 바치고, 또 죽지 않게 밥을 차려주는 것 뿐인데. 이런 것도 효도인가. 어린 날의 나는 그 모든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가난과 폭력에 지쳐 집을 나오자 마음 먹었을 땐 고작 내 나이 열일곱이었다. 어깨에서부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병원부터 가야하나. 술에 취한 아버지의 힘을 감당하기란 매우 힘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깨진 술병을 휘둘렀다. 결국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났을 때,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로 자고 있었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집을 나가자. 나가서 얼어죽는 한이 있어도 여기에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창문 새로 하늘에 뜬 달을 바라봤다. 몰래 모으던 돈이 담긴 통장을 챙기고 몇 안 되는 짐도 챙겼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잠에서 깰까 노심초사하며 집을 나서려다 자리에 멈춰섰다. 고개를 돌려 집 안을 보자 골아떨어진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 나는 절을 한 번 올리고 가만히 말을 꺼냈다.

"나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아요, 아버지."
"……."
"나도 그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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