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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 알비레오

Mermaid me 2017. 8. 7. 14:40

"형 잘 대들더라."
"……."
"아까 담배 핀 거 형이지?"

형은 대답을 않았다. 말 하지 않아도 답은 뻔했기에 굳이 되묻지는 않았다. 반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담배 사건은 박찬열이라는 희생자를 낳은 채로 애매하게 끝나버렸다. 아, 뭐. 애초에 범인이 형이었으니 희생자라 칭하기도 뭣하긴 하다만. 소름끼치는 정적만이 가득하던 교실에서 한참이나 생각을 정리하던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들 할 일 하라며 반을 나서셨다. 내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괜히 더 신경쓰고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이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는 종이 치자마자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형을 찾기 위해서였다. 또 담배를 피고 있겠지. …말도 안 되고 무서운 생각들이나 하면서. 화장실에 다다라 문을 열어 제치자 예상대로 형은 그곳에 있었다. 손가락 새에 담배를 끼운 형이 가만히 필터까지 타틀어간 꽁초를 창틀에 놓는다. 무슨 배짱인지 문도 잠그지 않은 채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아무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누가 보기라도 했어봐. 자기가 무슨 투명인간이라도 되는줄 아는 거야 뭐야.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옆으로 다가가도 역시 형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형의 옆에 다리를 쭈구리고 앉았다. 냉한 눈빛의 형이 새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이윽고 불이 붙고, 형의 폐부 깊숙히 들어갔다 빠져나온 담배 연기가 내 시야를 흐렸다.

"…이제 잘 피네. 맨날 눈물 콧물 다 빼더니. 그땐 보는 내가 더 힘들었어. 담배도 못 피는 게 피겠다고 바락바락 우겨서는…."
"……."
"왜 그랬어?"
"……."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
"형."

형은 예전부터 죽을만큼 힘든 일이 있으면 담배를 태우곤 했다. 자주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볼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담배는 모범생으로만 비춰지던 형의 일탈. 또는 숨구멍이었던 것이다. 형. 하는 내 부름 덕에 날 내려다보는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과 나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공허한 눈, 표정없는 얼굴의…형. 순간 턱 막히는 숨에 굽히고 있던 다리를 펴고 일어나 화장실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재꼈다. 형. 나 무서워. 역겨워. 토할 것 같아. 왜 그래. 왜 그래. 형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담배를 놓지는 않았다. 나는 별안간 형의 집요한 시선이 무서워져 고개를 깊게 숙여야 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이 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아아, 박찬열…. 너는 대체…. 덜덜 떠는 내 주위로 형의 차분한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이걸 다 못 풀었는데 어떡하지 걱정됐고, 이걸로 인해서 성적이 떨어지면 난 또 얼마나 엄마한테 뺨을 맞고 무시 당해야 할지,"
"……."
"난 그게 너무 무서웠어."

작게 웃는 형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눈 앞에 그려지는 형의 뺨 맞는 모습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이따금 형의 바닥을 머리 속에 그려보고는 했다. 결과는 결국 괴로움이었지만 왜인지 쉽게 고칠 수 없는 습관이었다. …이쯤 되면 병인 것 같기도 하고.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내가 침 삼키는 소리가 화장실 가득 선명하게 울린다. 형은 아직 하고싶은 말이 많아보였다. 나는 조용히 이어질 말들을 기다렸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형과 나 둘 중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 엄마 되게 이기적이야. 너도 알지? 내가 조금만 미끄러져도 날 몰아세워. 숨 막힐 것 같아도, 그때마다 주먹 꾹 쥐어가면서 참아. 엄마가 그러더라. 네 성적으론 아무것도 못 한다. 네가 잘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라는 사람이 없으니 네가 그 사람 몫까지 해야한다. …날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했지만 그건 전부 엄마를 위한 거였어."
"……."
"근데 내가 왜 반항대신 순종을 택했는지 알아?"
"…그만."
"나한텐 의대가 중요했거든."
"…그만해 형."
"아빠랑 이혼하고 자랑할 거라곤 내 성적밖에 없는 엄마한테 중요했으니까, 의대가."
"형 제발!"
"넌 꼭 네가 하고싶은 거 하고 살아."

형이 말을 할 때마다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 담배 연기는 한참을 내 시야 앞에서 넘실거리다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구름처럼 뭉친 담배연기가 흩어져 하늘에 넓게 퍼진다.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탁 하고 터진다. 이곳이 학교라는 것도 망각하고 어린아이 엄마 찾듯 서럽게 소리내어 울었다. 형의 비밀이 늘 궁금했지만 막상 들으니 그저 두려움밖에 몰려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그게 형이라면 더더욱. 형은 내 울음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담배를 태웠다. 형은 왜 그래. 형은 왜 바위처럼 단단하지 못해서, 그렇게….

* * *

"같이 가."
"나도 가고 싶어."
"가면 되잖아."
"뺨 맞고싶지 않아."
"안 맞게 해줄게."
"못 할걸."

어…. 그건 모르지. 박찬열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안 맞게 해줄게. 하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못 할걸. 대답한 박찬열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다. 오늘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안내장이 나눠졌다. 무려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이라 반 아이들 모두가 기대에 가득 차있었다. 한 번도 이런 행사에 참여한 적 없던 박찬열을 제외하고 그렇다는 말이다. 박찬열은 수학여행이나 전일제같은 학교 행사에 참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그 시간에 공부를 했다. 물론 박찬열의 의지는 아니었다.

"왔니?"
"아…. 안녕하세,"
"할 말 있어요."

열 두시가 넘어 도착한 박찬열과 나의 집에는 아줌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식탁에 놓인 반찬통들을 보고 반찬 가져다주러 오셨구나 생각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뭔가를 결심한 듯한 박찬열이 인사도 없이 할 말 있어요. 하며 말을 꺼낸다. 박찬열은 내가 놀란 티를 내기도 전에 쾅쾅 발을 굴리며 아줌마 앞으로 가서 섰다. 쟤가 갑자기 왜 저래? 아줌마는 무표정으로 박찬열을 응시했다. 그것은 박찬열도 마찬가지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얼른 신발을 벗고 박찬열의 옆에 가서 섰다. 아줌마와 한참이나 시선을 섞던 박찬열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아줌마의 눈 앞에 들이민다. …수학 여행 안내장이었다.

"수학여행. 일본으로 가요. 보내주세요."
"네가 지금 거기 갈 때니?"
"보내달라고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변백현은 보내주실 거잖아요."
"백현이는…!"
"대체 누가 엄마 아들이에요? 저예요 백현이에요?"
"그만 못 해?"

아줌마가 형을 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높이 들어올리셨다. 길게 이어진 아줌마와 박찬열의 대화 속에서 가만히 듣기만 하던 나는 얼른 손을 뻗어 아줌마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놀란 눈의 아줌마가 나와 눈을 마주한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니가 그럴 수 있냐는 듯 날 바라보는 아줌마를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은 올곧은 시선으로 아줌마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대체 누가 엄마 아들이에요? 저예요 백현이에요?' 하는 질문에 아줌마가 대답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줌마는 그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지 못 하실 거란 걸. 그리고 그럴 때마다 답을 알려주는 건 내 몫이었다.

"…아줌마 아들 저 아니고 찬열이에요."

씹듯이 내뱉은 내 말에 헛웃음을 터뜨린 아줌마는 내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내셨다. 나는 그제서야 와르르 무너지는 숨을 내뱉었다. 내 손을 꽉 쥔 형이 부들부들 떨어댔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형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화를 가라앉히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우리는 아줌마를 재촉하기보다 다시 말을 꺼내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게 맞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으시던 아줌마는 별안간 박찬열에게서 수학여행 안내장을 뺏어들어 그것을 갈기갈기 찢으셨다. 깜짝 놀란 내가 아줌마를 말렸지만 그땐 이미 아줌마가 산산조각난 수학여행 안내장을 박찬열의 눈 앞에 뿌리신 후였다. 눈 앞을 날던 종이 조각들이 가만히 바닥에 내려앉는다. 소름끼치는 정적이 거실을 휘감았다. 나는 종이 조각들을 바라보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아줌마는 박찬열의 기대를 갈기갈기 찢어 온 세상에 뿌려버리신 것이다.

"엄마 진짜 대단하시네요."
"…뭐?"
"소름 끼친다고요."
"박찬열."
"엄만 최악이야."

파르르 떨며 말을 끝마친 박찬열이 곧장 내 손목을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쾅 하고 닫는다. 파들파들 떨리는 어깨가 꼭 절벽 끝에 선 꼴이다. 나는 말 없이 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날 밤, 박찬열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 * *

"아, 차녈이…."
"뭐? 야, 변백현. 어디 가! 저거 취한 거 아냐?"
"냅둬. 쟤 저래도 집 잘 가."

흔한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미성년자 타이틀 달고 친구들과 술 마시기. 고등학생쯤 되니 곧 성인인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엇나간 행동을 하면서도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됐다. 쨋든, 학교를 마친 후 친구들과 함께 빈 집에 모여 치킨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를 확인하자 벌써 열 두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박찬열 데리러 가야 되는데. 여기서 학교까진 거리가 조금 있으니 지금 출발해야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박찬열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친구 하나가 날 붙잡는다. 그걸 말리는 것은 김종인이었다. 내가 한창 놀다가도 열 두시 즈음만 되면 간다는 사실을 김종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집에서 나와 학교로 걸었다. 며칠 전만 해도 더웠는데 이젠 좀 쌀쌀하다. 내일은 형 가디건 챙겨줘야겠다. 근데 내가 가을 옷을 어디에 뒀었지? 가을 옷의 행방을 생각하며 십 분 쯤 걸어 도착한 교문 앞에는 심자를 마치고 나오는 3학년들이 한 둘 보였다. 원래 이쯤이면 박찬열도 보여야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렇지가 않다. 혹시 몰라 5분 쯤 더 기다려봐도 박찬열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방 싸느라 늦나…. 전화 해봐야겠네.

"어, 형. 왜 안 나와?"
-…나 집이야.
"…자습 안 했어? 안 하면 말 좀 해주지. 나 밖에 있어서 형 집에 있는지 몰랐잖아. 왜 안 했어?"
-…….
"형."
-…….
"박찬열."
-…….
"형? 찬열아."

결국 전화를 걸었을 땐 형에게서 집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몽롱했던 정신이 확 깬다. 집이라는 형의 말에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대답하며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형은 내 물음에도 답이 없었다. 이상하다. 정말 뭔가 이상하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소리들에 집중했다. 그러자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아무래도 욕실안인 것 같았다. 두려움은 심장박동이 되어 빠르게 뛰어댔다. 이어진 내 부름에도 아무런 답 없이 전화는 끊겼다. 끊은 거야? 지금 이게 무슨…. 잠깐 멍하니 있다 급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을 향해 뛰었다. 몇 년간 박찬열을 봐온 내 본능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 해주고 있었다.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럴수록 더 빨리 뛰었다. 불안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심장이 카페인을 과하게 섭취했을 때처럼 빠르게 뛴다.

"박찬열!"

쿠당탕. 집에 도착해서는 신발벗는 것도 잊은 채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쾅쾅쾅 욕실 문을 두드렸다.

"형. 뭐 해? 그냥 씻는 중이지?"
"……."
"왜 대답을 안 해 형. 나 무서워. 응?"
"……."
"박찬열. 찬열아. 찬열아?"

몇 번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돌리면 처음부터 잠겨있지 않았는지 그냥 달칵 열린다. 안도감과 함께 두려움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문을 열면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을 지 몰라 손이 달달 떨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내쉬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 내가 이 문을 열게되면, 과연 어떤….

"…아아, 제발! 제발! 박찬열!"

축 늘어진 형은 미동도 없었다. 욕조에 가득한 물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물이 넘쳐 흐르는 욕실 바닥에는 커터칼 조각이 어지럽게 늘어져있었다. 시야가 온통 벌겋다. 가쁜 숨을 고르며 눈을 꾹 감았다 떠도 그 선명한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얼른 형에게로 다가가 벌건 핏물이 담겨있는 욕조 마개를 빼고는 폰을 꺼내들어 곧장 119에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려 실수를 하기까지 했다.

"119, 119죠? 여기 사람이 손목을 그었어요. 네? 아아, 여기가 어디냐면…."

술기운에 두려움이 겹쳐져 눈물이 물밀듯 넘실거렸다. 눈물이 주륵주륵 흐른다. 형이 이런 일을 벌이기까지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119에 주소를 말해주고는 다시 박찬열의 상태를 살폈다. 잠을 자고 있다 해도 믿을만큼 평온한 형의 얼굴이 다급한 지금의 상황과 너무 달라 괴리감이 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커터칼 조각을 가만히 바라보다 왈칵 터지는 울음을 꾸역꾸역 참아내려 입술을 짓이겼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박찬열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어쩔줄 몰라하며 엉엉 눈물을 흘렸다. 형이 이 꼴이 되도록 친구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새하얀 욕실 바닥의 빨간 피들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형. 제발 눈 좀 떠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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