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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잠깐 썼었던…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몸도 마음도 아픈 고등학생 찬녈×찬녈 주치의 배켠으로 백열이요. 근데 점점 배켠이 찬녈 마음의 문 열고 사랑도 하게 되겠져. 헉 나 너무 클리셰만 좋아해서 탈이야
배켠이는 이 병원에 처음 발령받았고 찬녈이는 어릴 때부터 계속 1인실에 입원해있었겠죠. 약한 몸 덕에 학교도 제대로 다녀본 적 없어. 중학교는 다니다가 그만뒀다. 그 후로는 계속 병원에서 살았지. 그래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꽉 닫고 살았어. 언제나 공허한 눈을 하고있다. 쨋든 배켠이가 찬녈이 주치의로 발령나고 동료 의사쌤들 전부 걱정하겠지.
-찬녈이 걔랑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들 걸요?
-아…그래요?
-네. 애가 정말 시체같이…어후, 수고해요 변쌤.
배켠이도 동료쌤들이 하도 수고하라고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좀 걱정되긴 하지. 주치의니까 자주 볼 건데 못 친해지면 서로 불편할텐데… 그리고 처음 만나는 날 배켠은 잔뜩 긴장하고 찬녈 병실 들어가겠지.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는데 침대에 멍하니 앉은 찬녈이 보인다. 돌아볼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하는데 그래도 자기가 먼저 다가가는 게 낫겠지 싶어 문 닫고 들어와서 찬녈한테 인사하겠죠.
-안녕. 난 새 주치의 변배켠이고 하루에 세 번 너 검진하러 올 거야. 불편한 거 있거나 몸이 아프다 싶으면 나한테 말하면 돼. 알겠지?
하는데 묵묵부답. 예상했던 거지만 조금 당황스럽겠지. 그래도 친해져야해. 이 생각 한 배켠이 찬녈 옆으로 가. 창밖을 보고있던 시선을 가리니 멍하니 있다가 그냥 누워버려. 어라 이게 아닌데.
-혹시 지금 하고싶은 거 없어? 쌤이 같이 해줄게.
-
-게임? 뭐, 산책?
역시나 묵묵부답…배켠은 찬녈 침대에 걸터앉아.
-잘생겼네. 너 나이 조금만 많았으면 고백했다, 내가.
-
-아, 그치그치. 사랑에 나이가 뭔 대수라고. 안 그래?
-
-이야, 손도 남자답네! 잡아봐도 돼?
분위기 풀려고 온갖노력 다 하는 변쌤. 그래서 장난치면서 찬녈 손 잡는데 진짜 차가운 거. 놀란 배켠이 티는 안 냈지만 손이 이렇게 차서 어떡하냐며 맥박 짚어보는데 너무 느린 거야.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몸에 불편한 건 없어? 팔 다리가 저린다던가…
-
-나한테 말 해주면 안 될까?
부탁을 해도 역시 답은 없겠지. 말을 안 해주면 자기가 알아내야겠다 싶었던 배켠. 목에 걸고있던 청진기를 귀에 끼우고 찬녈 심장 부근에 가져다대는데 찬녈이 손을 탁 쳐내는 거.
-아, 왜 그래? 불편했어? 미안. 근데 찬녈아,
-죽어도 내가 죽어.
배켠 되게 당황하겠지. 고등학생 주제에 무슨…이런 생각을…
-왜 죽어. 내가 살려.
-나가.
-찬녈아.
-나가라고 당장!!!
그렇게 소리지르는데 배켠은 이제 어이가 없을 정도야.
-죽고 싶으면 입원은 왜 했어. 너 다신 죽는다는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말 하고 다시 청진기 가져다대는데 찬녈이 청진기 뺏더니 던져버리는 거. 덕분에 화분이 와장창하고 깨졌다. 그 소리 듣고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들이 놀래서 화분 치우려고 하겠지. 배켠은 인상 굳히고 찬녈만 바라보고 있어.
-두세요. 제가 치워요.
그럼 간호사들은 빗자루 내려놓고 병실을 나가. 찬녈은 배켠 노려보다가 다시 누으려고 해. 그럼 찬녈 어깨 잡고 일으키는 배켠이다.
-무슨 짓이야. 내가 너 때렸어? 던지긴 왜 던져.
-
-야. 너 힘든 거 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잘 알고,
-지랄.
-뭐?
-아파보지도 않은 새끼들이 말만 잘 하는 거 여전하네.
-박찬녈.
-죽어도 내가 죽는다고. 챙겨주는 척 좀 하다가 월급이나 받아. 좆같은 입원 누가 하고싶어서 해? 그니까 제발 나가.
그리고는 휙 돌아누워버리는 찬녈이지. 배켠은 헛웃음을 쳐. 지금은 대화가 안 될 거라 판단하고 화분 치우고 청진기 들고 병실 나오겠지. 지나가던 동료쌤들이 찬녈이 화분 깼다는 소식 듣고 변쌤한테 다가와.
-찬녈이가 화분 깼다면서요? 괜찮아요?
-아, 네. 그냥…뭐랄까, 좀 어려운 아이네요.
-그렇다니까…
배켠은 찬녈 마음 자기가 꼭 고쳐먹게 만들 거라고 다짐해. 점심 때쯤 돼서 찬녈 밥 먹을 때 병실 문 똑똑 두드리고 들어가겠죠.
-와. 메뉴 좋네. 갈치조림에 미역국에…안 먹어?
-
-돈 내고 먹는 밥을 왜 안 먹어. 근데 그거 알아? 갈치조림에는 이 무가 제일 맛있는 거.
하는데 찬녈은 그냥 배켠 빤히 보다가 누워버려.
-사람 무시하는 건 진짜 잘해.
-
-자. 오늘은 어디 불편한데가 없으신가요, 박찬녈 환자?
-
-역시 대답이 없으시니 알아서 검진하겠습니다~
뻔뻔하게 나가는 배켠이지. 청진기 끼고 찬녈 심장에 가져다대는데 가만히 있는 찬녈이다. 일정하게 뛰는 심장소리 들리는데, 느리다. 배켠은 뭔가 초조한 기분이 들지. …너무 느린데.
-숨 쉴 때, 혹시, 버겁고 그래?
-
-말 해줘.
-
-찬녈아.
-내가 기억하는 매 순간.
-어?
-매 순간이 숨 쉴 때 버거워요.
-…
-저 좀 쉬게 나가주실래요.
-아, 어. 그래.
배켠은 찬녈 이불이랑 안 먹는 점심 정리해놓고 병실을 나와. 맥박도 너무 느리고, 상태가 많이 안 좋은데 왜 이때까지…
-수술도 안 하고…
배켠은 그 후로도 찬녈 병실에 맨날 들러서 뻔뻔하게 혼자 말걸다 나가고 그래. 근데 하루는 배켠이 응급환자 때문에 맨날 오는 시간에 못 온 거. 찬녈은 웬일로 늦네. 이 생각 하겠지.
-늦었지. 미안, 응급환자가 있어서…
-피.
-어?
-묻었다고요.
찬녈말에 가운 내려다보는데 아까 응급환자 볼 때 피가 묻었던 게 보이지.
-아. 맞네. 갈아입고 올게.
-그냥 벗어놔요.
쟤가 웬일로…생각한 배켠이 가운 벗어서 밖의 간호사한테 건네. 이것 좀. 하면서. 그리곤 의자 끌어와서 찬녈 옆에 앉아. 배켠이 확인한 찬녈의 건강상태는 어릴 때 수술 했지만 재수술 필요한 상태야. 근데 시기는 한참 지났고 아무리 설득해도 찬녈이 수술 안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맥박도 느리고…언제 멈출줄 모르는, 그런 심각하고 약한 몸을 가지고있겠지. 길어도 세 달이다. 길어도. 그래도 배켠 티 안 내겠지. 제일 힘든 건 차녈 본인일 테니까. 그 후로 배켠 응급환자 있을 때만 다른환자 보고 거의 차뇨옆에 있어. 밥도 같이 먹는다.
-나 왔어. 오늘 메뉴 봤어? 나 계란찜 진짜 좋아하는데.
하도 배켠이 치대니까 찬녈도 반은 포기한 상태.
-네. 그러세요.
-어. 얼른 먹자.
책상 올리고는 찬녈 식판 앞에 자기 식판 나둬. 그리고는 찬녈이랑 침대에 마주보고 앉아서 밥 먹는 배켠.
-근데 찬녈아.
-네.
-여자친구 사겨봤어?
-웃기려고 한 말이에요?
-아니?
-이 몸 가지고 무슨 여친이에요.
-그런가. 그럼, 남친?
-뭐라고요?
-왜애.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는데요, 지금 성별이 문제가 아니지 않나?
-오, 말 잘 한다 이제.
-…그냥 밥 드세요.
차뇨도 조금씩 배켠이랑 얘기하고 배켠이 농담 던지면 조금이지만 웃기도 해. 하루는 배켠 수술 끝내고 쉬고있는데 간호사들이 바쁘게 뛰어오는 거.
-변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찬녈이가,
-…박찬녈이 뭐요.
-일단 어서요!
그럼 가운도 제대로 못 챙겨입고 차녈 병실로 뛰어. 그럼 심장 붙잡고 거칠게 기침해대는 찬녈이 보이겠지. 간호사들 어쩔줄 몰라서 찬녈이 붙잡고 있고.
-나와요.
하고 간호사들 뒤로보낸 배켠이 찬녈 상태를 살펴. 얼른 청진기 가져다대는데,…왜 이렇게 빨라.
-박찬녈.
불러도 정신없어서 대답 못 하겠지. 간호사 한 명한테 주사 가져달라고 부탁한 배켠이 차녈 어깨 붙잡고 눈 마주치려는데 찬녈이 고개 막 젓는 거.
-왜. 괜찮아. 나 봐.
-다, 나가라고 좀,
-뭐?
-당신빼고 제발 좀 나가라고!
그럼 간호사들 당황해서 허둥지둥 병실 나서겠지. 간호사 다 나간 거 확인한 배켠이 아직도 기침하는 찬녈 상태 살피는데 애가 갑자기 배켠을 꽉 끌어안아. 놀란 배켠이 눈 댕그랗게 뜨는데 찬녈이 엉엉 울면서 말을 꺼내지.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죽을까봐 무서워.
배켠은 그게 너무 충격이야.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애가 갑자기 이러니까. 자기 몸이 안 좋은 상태란 걸 잘 아니까 이러는 거다. 그때 간호사가 주사 가져다주고 배켠은 찬녈 팔뚝에 주사 놓겠지.
-하나도 안 무서운데. 너 안 죽어.
배켠은 텅 빈 주사기 바닥에 내려놓고는 자기한테 안긴 찬녈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약 기운 때문에 기침도 줄어들고 좀 진정됐는지 울음도 그쳤다. 아무리 센 척을 해도, 박찬녈은 아직 애였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나 있잖아. 안 무섭다, 그치?
근데 배켠은 잘 알겠지. 이제 이런 일이 자주있을 거고 강도는 더 세질 거란걸. 그럼 언젠가는 이렇게 기침하다가 죽어버리리란 거란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이 고등학생은 이제서야 나한테 마음을 열었는데. 배켠은 찬녈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어.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찬녈은 점점 약해지겠지. 찬녈은 어리광이 늘었다. 툭하면 무섭다며 배켠에게 매달려 놔주질 않았어. 잘 때도 배켠이 함께 있어줬겠지.
-쌤.
-응.
-죽기전에 해보고싶은 게 많은데, 저는.
-다 해보면 되겠네.
-사랑도 키스도 다 해보고싶어요.
-…해보면 되지.
-혹시 나 사랑해줄 수 있어요? 사랑하는 척도 괜찮아요.
사랑이라. 이 고딩을 사랑하는가 그런 생각은 해본적 없지. 그럼 이 고딩을 사랑해줄 수 있나? 그거야 당연하다.
-진심으로 사랑해줄게.
배켠은 찬녈을 꽉 끌어안아줘. 마른몸이 느껴지는데 괜히 울컥하겠지. 그래도 티 안 내고 찬녈 머리에 이마를 부빈다. 사랑해줄게. 내가 이만큼이나 사랑받는 사람이었구나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 해서 사랑해줄게.
-그럼 언젠간 키스도요.
-…그래.
그날 잠든 찬녈을 끌어안고 배켠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신께 기도했어. 이 아이가 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해주시고…아프지않게 해주소서. 하지만 신은 야속했겠지. 찬녈은 거의 누워서 지냈다. 힘이 없대. 그냥 잠이 온대. 배켠은 진짜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았어. 그날도 햇빛 들어오는 침대에 누워 자고있는 찬녈을 살살 흔들어 깨운 배켠이 차녈 머리 손 끝으로 살살 정리해주면서 묻겠지.
-산책할까?
그럼 찬녈은 좋다고 끄덕끄덕. 나갈 준비를 하겠지. 병원뒤에 위치한 산책로를 걷던 둘이 벤치에 앉아. 봄이라 따뜻한 햇살이 가득해. 그러다 찬녈이 말을 꺼낸다.
-언제일까요. 내일? 아님 오늘?
-뭐가?
-저 죽는 거요.
-…야.
-봄이라서 다행이다. 추울 뻔했다. 그쵸.
-아니야. 너 안 죽어.
그렇게 말하지만 찬녈이든 배켠이든 불안한 건 매한가지야. 배켠은 찬녈의 손을 꽉 쥐어. 내가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런 뜻이다. 하지만 찬녈은 잘 알고있어. 자기가 이 봄을 느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봄 냄새를 못 잊으면 어떡해요.
-계속 맡으면 되지.
-쌤.
-응.
-고마워요.
-그런 인사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은데.
-사랑해요.
-…나도.
-
-나도 사랑해. 진심으로.
그렇게 말 하며 배켠은 찬녈을 꽉 안아줘. 느껴지는 마른몸이 찬녈의 상태를 말 해준다. 쨋든 병실로 들어가서 피곤해하는 찬녈 이불덮어줘. 방싯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찬녈을 빤히 바라보던 배켠이 찬녈에게 입을 맞춰. 까슬한 입술에 닿는 느낌이 소름돋을 정도로 좋아서 찬녈은 입을 맞댄 채로 웃어. 이내 입을 떼고는 웃어버리는 배켠.
-하고 싶어서. 니가 해달라고 해서 하는 거 아니고.
-알아요.
-진짜야. 내가 하고 싶어서.
-안다니까.
-사랑해.
-사랑해요.
찬녈의 앞머리를 쓸어넘겨준 배켠이 찬녈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고 병실을 나와.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그걸 알면서도 병실을 미련없이 나온 이유는, 그냥, 이기심에.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 하고싶은 이기심에 그랬다. 괜히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아내고는 의자에 앉아. 부디 저 불쌍한 소년을…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주시고…
다음날 응급환자를 보고 응급실을 나오던 배켠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간호사를 의아한 눈으로 봐.
-왜 그래요.
-변 선생님, 찬녈이가. 아, 맥박도 불안정하고 숨을 못 쉬어요!
그 말을 듣고는 얼른 찬녈의 병실로 달려가는 배켠이야. 아아, 제발. 급하게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겠지. 찬녈에게서 허탈하게 손을 떼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문 너머로 보이는데 들어갈 자신이 안나.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간호사가 나오고 배켠은 간호사의 등을 쓸어내려준다.
-수고했어요. 울지마. 찬녈이도 슬퍼할 거예요.
정작 슬픈 건 자신이면서, 덤덤한 척 하는 배켠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면 평소보다 편한하게 눈을 감은 찬녈이 보여.
-이제 안 아픈가보네…
허탈하게 웃으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줘.
-다행이다, 따뜻할 때 가서.
-봄 냄새 잊지 마.
-변 선생님. 이거…찬녈이가 혹시라도 자기가 떠나면 선생님께 드리라고…
-아, 네. 언제요.
-어제 밤에요.
간호사가 건넨 것은 편지야. 고개 끄덕인 배켠은 찬녈 부모님 만나고 며칠 후 있는 찬녈의 장례식까지 다 끝내고 나서 집으로 들어와. 편지는 아직 못 읽었다. 무서워서. 그냥, 그대로 무너져내릴까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친 배켠이 천천히 편지를 읽어내려. 편지속에는 고맙다, 사랑한다. 당신이랑 함께 느꼈던 봄날이 너무 소중했다.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태어날테니 그때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느냐. 그런, 가슴 절절한 내용이 가득해. 결국 눈물을 흘리는 배켠. 꼭꼭 눌러쓴 편지를 품에 안고 펑펑 울어. 안녕 내 소년. 더 이상 아프지 말고 다음에 만날 그때까지 안녕. 사랑해. 당신과 함께했던 봄이, 내겐 선물이었음을.